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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약




나는 대학교 3학년때부터 엄마가 중매쟁이 한테 부탁을 해서 맞선을 보기 시작 했다. 또한 그것도 성에 안차시는지 바로 위 오빠의 인맥중에서 전문직으로 공부 하고 있는 친구들, 선배들을 총동원 해서 소개를 받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가끔은, 연한 녹색 한복을 입으신 할머니가 나를 아래위로 쳐다보면서 썩 A급은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한 표정이 보였다. 바로 그때 연년생인 여동생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그 아줌마의 표정은 활짝 밝아지면서 둘째 따님이 이쁘시네요. 그 소리에 놀랜 엄마는 황급히 여동생한테 방에 들어가라고 하시고, 아직 둘째 딸은 나이가 어려서 큰 딸 먼저 보내야 한다고 말씀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중매하시는 할머니가 집에 오실 때는, 엄마는 항상 얌전한 홈드레스로 옷 갈아 입으시고 고상하게 아버지가 아끼는 나무의자에 우아하게 앉아계셨다. 나한테도 화장도 이쁘게 하라고 하고, 하늘하늘 한 꽂분홍색 땡땡이 실크 원피스 입으라고 하시고, 티와 과일을 사뿐 사뿐 얌전하게 나오라고 시켰다. 중매하시는 할머니는 과일 쟁반을 들고 사뿐 사뿐 하게 들어간 나를 아래 위로 쳐다 보면서 엄마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시고 할머니가 가실 때는 대문까지 배웅하면서 차비 하시라고 흰봉투도 건너주는 것을 봤지만, 나는 모르는 척 했다.

하루는 아버지가 대학 후배가 소개를 했는데 부친이 1954년에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미국 유학도 다녀 오신 분이시고, 얌전한 교수 집안에다 미국에서 공무원으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라고 꼭 만나야 한다고 통보를 하셨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이제는 더 이상 선보러 안나간다고 울고 있으니 아버지가 약속을 했는데 어떻게 하냐고 그냥 다 같이 다녀오자고 해서 울다 퉁퉁 부은 얼굴을 가지고 호텔 커피샵으로 부모님 하고 같이 나갔다. 역시 내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부모님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시고, 나는 적당히 기회에 일어나야 겠다고 생각 하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미국이야기를 하는데 신세계 같았다. 미국 이라는 곳에 가서 살아봐도 좋겠다. 정말로 야자수가 쭉쭉 있고, 피자도 맛있어요? 이런 저런 화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진솔해 보이는 모습에 살짝 호감이 느껴졌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데이트를 하고 나서 나는 미국으로 시집을 왔다.

그 남자 하고 지금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서 어느덧 35년을 살고 있고, 엄마는 전문직 사위를 그토록 원하셨지만, 이루지를 못하신 것이 한이 되셨는지. 딸이 미국에서 고생 한다고 항상 건강 챙기라고 하시면서 훌쩍거리던 우리 엄마는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느 부모든 자식을 잘 결혼을 시키고 싶은 욕심 다 이해를 하고 또한 자식은 그 나이에 그 당시의 나의 모습처럼 결혼 안하고 싶어. 내가 알아서 할텐데 하는 마음도 이해를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인생을 살아본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이 행복하게 고생 안하고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 뿐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철이 났으니 어떻하면 좋아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냥 지금 남편 하고 백년 가약 해야지. 살아보니 편안한사람이 최고네요!

결혼 정보회사 듀오 이 제니퍼 팀장

(213)383-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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